유럽 도시 기행 1. – 유시민

작가/예술가는 상상력의 인격화이자, 결정체다. 더 나은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현실적 실현 가능성의 한계 앞에 멈출 때, 작가는 제한 없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사회를 노래하고 그린다. 인문학자와 작가가 이상주의와 상상력을 잃고 소매상이나 기술자로 전락할 때, 그들이 제도 정치인의 꽁무니나 쫓고 예민하고 성찰적인 시민들이 그들보다 오히려 전위일 때, 그들은 죽음을 맞는다.

김규항의 글 ‘전위의 떼죽음’ 중

책을 읽다 보면 출판사와 협약 하에 다녀온 여행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도시였는지, 그 다음은 저 도시였는지에 대한 이유가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 여행의 별다른 컨셉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 실린 네 도시가 역사적으로 고대에서 근세까지의 서양 문명의 중심이었던 것이 짐작되긴 하는데, 이 책에서 그 연결을 설명해주어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단지 이 도시에 있기 때문에 관련한 자료를 조사하여 이야기를 풀어놓는 느낌이었다. 이외에는 소소한 여행에서의 감상들.

신선함이라면 오히려 디씨 힛갤에 있는 도보여행기들이 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여행작가의 책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이다. 다만 글쓴이가 유시민이라는 브랜드일 뿐. 쉽게 쇠락하지 않을 필력과는 별개로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조국 사태에서 보인 반응도 그렇고.

다음엔 이 걱정이 나의 기우임을 증명할 멋진 책이 나오길 기원한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