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T

“쟁글은 Super T에요.” 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아리송했다.
MBTI에 대한 나의 인식과는 별개로, 얼마 전 봤던 연애 리얼리티 쇼에서 새 출연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다른 출연자들이 일단 MBTI부터 들이대는 상황이 당시엔 매우 낯설었는데, 이런 식으로 MBTI의 요소가 실생활에도 맥락없이 등장하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심리테스트를 좋아하던 대학교 1-2학년 때쯤 MBTI를 처음으로 해보고 왠만한 심리테스트는 다 박살낼 정도로 정교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 MBTI 이야기 하면 외계인 취급 당했을 터라 남들 앞에서 관련 주제를 꺼낸 적도 없었는데.. 느리지만 세상은 변한다. 혈액형에서 MBTI로 변하는 데 30년 걸렸다.

각설하고, 문제는 내가 Super T로 보일지언정 실제로 나를 추동하는 건 순수한 직감-감정의 근원적 덩어리라는 거다. 어렵게 말해서 저런 식이고, 쉽고 나쁘게 말하면 ‘합리화’라는 단어와 가장 가깝다. 이것은 유전일까 교육일까. 내가 혐오했던 부모의 그 모습을 따라가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그 합리화는 훨씬 정교하고 체계적이지만. 눈치 좀 있는 사람들은 항상 그 합리화의 이면을 캐고 싶어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들의 탐색을 다시 눈치채고.. 우스운 티키타카다.

가정에서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다. 내가 세워놓은 스스로의 기준이 아이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이 강박은 아버지로부터 내게 그대로 전이되어 내려온 듯하다. 그러면 안되는지 알면서도, 아이들이 아이들의 방식을 행하는 것 뿐이지만 동시에 상황을 어지럽히는 순간 스스로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걸 느낀다. 공감과 놀이 파트너로서의 부모가 아닌 억압과 통제로서의 부모상이 되어버렸다.

“아빠는 정말 이상해.” 반쯤 농담이라고 한 이야기에 웃으면서 소린이 대답했지만, 아마 이 대답이 그녀와 나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표현일 거라 생각했다.

너에게는 이미 내가 이상한 존재겠지. 인정해. 
그로부터 두시간 후 소린과 나는 엄청나게 소리를 질러대며 싸워댔다.
“김소린이 외모는 당신이어도 성격은 나랑 똑같은 듯.” 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건 도피성으로 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가 나와 소린의 관계와 똑같은 정도일 뿐인데 내가 억지로 믿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이성적인가?’ 대답은 ‘아니오.’다.
나는 어리석음을 주지하며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존재일 뿐이겠지. 나의 선택은 대부분 취향과 감정에 따랐었다. 그러한 잘못된 선택의 누적들로 인생이 뒤틀리는 걸 깨달을 때 그제야 난 정신을 잠시 차리고 정보를 긁어모으고 이성적인 선택을 찾아보며 틀어질 뻔한 삶을 교통정리하곤 했다.

누군가 나를 Super T로 여긴다면 감사한 일이다. 직업적 관점에서 우리는 근거 기반으로 합리적 결정을 내리도록 훈련받았고, 그렇기에 그러한 평가는 내가 교육을 잘 받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성적인지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엔 난 너무 감정에 휘둘려왔고, 잘못된 줄 알면서도 잘못된 행동을 해왔으며, 이 가정은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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