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 한 역사의 마감 中

그러나 민노당이 성공적으로 출발한 시기는, 동시에 97년 구제금융 사태와 함께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한창인 시기였다. 한국의 진보정치는 시작과 동시에 계급 타협이라는 그 체제적 기반을 잃고 쇠락의 도정에 선 것이다.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진당, 노동당, 녹색 정의당 등의 역사는, 수많은 사연이 있지만 크게 보아 도리없는 쇠락의 역사다.
 
세계 역사에서 진보정치 운동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주류였던 변혁적 사회주의 정치와, 20세기 중반 이후 주류인 계급 타협적 사민주의 정치다. 이제 둘 다 불가능해 보이거나 불가능하다. 사민주의의 고향인 유럽은 물론 세계 어디에도 아직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어느 사회든 기존 정치가 혼란과 무기력에 빠지고 그 틈새로 별의별 미치광이들이 준동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진보정치의 한 역사를 마감하며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급진성의 재구성’일 것이다. 그러나 성급한 전망이나 아이디어를 내놓기 전에, 먼저 꼭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들이 높이 쌓여 있다. 이를테면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 신자유주의와 함께 융성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적 비판, 노동과 계급 의제를 대체한(왜 확장이 아니라 대체였을까) 정체성 정치와 피시주의에 대한 토론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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