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미헬스 -정당사회학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는 책.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다.
저자는 운동에 환멸을 느꼈는지 말년엔 이탈리아 파쇼로 전향했다고 한다. 우리에겐 그럴 일이 없길.

28p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복잡다단한 경향들은, 첫째는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하고, 둘째는 정치투쟁의 본질에서 기인하며, 셋째는 조직의 본질에서 기인한다. 민주주의는 과두정으로 나아가고, 과두정이 된다.

36p
민주주의자들은 부르주아적이건 프롤레타리아적이건 지도자 문제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는, 부르주아지들이 소유의 문제나 기업이윤에 대한 연구를 대할 때와 똑같이 의심스러워하고 불쾌해하며 적대적이 된다.

43p
절대왕정은 자신의 법적 정당성을 초험적 형이상학으로부터 끌어낸다. 모든 형태의 군주정은 신에 호소함으로써 논리적 기초를 얻기 때문이다.

44p
민주주의는 인민 전체가 자신의 주인이며 따라서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도 책임을 진다는 원칙에 입각한다.

54p
그러나 문제는 혁명을 지향하는 정당들조차 보수 정당 못지 않게 과두적 경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데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 책의 대단히 중요한 소재이다. 혁명 정당은 과두적 경향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성립하고, 과두적 경향에 대한 부인(否認)을 지도 이념으로 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과두적 경향이 혁명 정당에도 나타난다는 사실은, ‘인간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구성한 모든 조직’ 내부에 과두적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언한다.

72p
대중을 지배하기란 소수를 지배하는 것보다 용이한 법이다. 왜냐하면 대중의 동의는 폭발적이고 불가항력적이며 무조건적이고, 그들이 일단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그에 저항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82p
민주주의는 투쟁하는 정당의 일상생활용품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전투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에게 필요한 것은 동작을 둔하게 만들지 않는 가벼운 무장이다. 정당이 인민투표와 같은 민주주의를 위한 예방 조치들을 적대시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고, 정당에게 카이사르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단히 중앙집권적이고 과두적인 위계 질서가 필요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89p
민주적 권리의 행사를 포기하는 것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농촌이나 지방도시 당원들의 정당 활동은 대부분 의무사항(당비 납부, 추천 후보들에 대한 찬성표)에 국한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의 정책은 보통 대도시 당 조직에 의하여 결정된다.

91p
덧붙일 것이 하나 있다.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특히 작은 지역 공동체의 집회 참석자들은, 하루 노동으로 탈진하여 저녁이면 쉬어야 하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소시민, 신문 및 엽서 판매인, 점원, 무직의 젊은 지식인 등의 중간적 집단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로 내세우고 미래의 계급으로 자축하면서 커다란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116p
공식적 기구가 확대되고 분화됨에 따라, 다시 말해 조직이 갈수록 많은 조직원을 갖게 되고 조직의 금고가 넘쳐나고 조직의 선전 매체가 증가하면 할수록, 조직내의 인민주권은 그만큼 밀려나고 결국 위원회의 전권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국정에서 정당이 그토록 격렬하게 공격하였던 간접선거 방식이 정당에 자리잡게 된다. 간접선거가 국가라는 넓은 범주에서보다 정당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 미치는 악영향이 훨씬 더 큰 것은 분명하다. 일곱 번의 선거 끝에 구성되는 전당대회에서조차 주요한 의제들은 위원회의 밀실에서 처리되기 때문이다.

118p
우리가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규정하는 일부 집단의 광범한 심리적 성향과 그 나라의 정치 발전으로 인하여 수많은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등이 노동자 정당에 가입하는 나라에서 쉽게 확인된다. 그 일탈 부르주아들이 조직화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로 변신한 것은, 그들이 부르주아 진영에서 획득한 우월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지식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125p.
사회민주주의란 모든 것을 인민을 ‘통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것은 지도자의 선의와 통찰력이다. 머릿수에 의해 결정되는 다수결은 단지 가장 일반적인 원칙을 제정할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 전술적으로 중요한 모든 사항은 지도자가 결정한다. 이는 소수가 전체 당의 이름으로 정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투쟁 정당이다. 민주주의는 목표일 뿐 수단이 아니다.

168p
대중이 주권을 몇몇 소수에게 위임하면 대중은 더 이상 주권자가 아니다. 인민의 의지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의지조차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거 행위는 대중주권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대중주권의 파괴 행위이다.

174p
그러나 당이 성장하면서 당원들은, 노동자와 관계되는 결정적 투쟁은 의회에서 치러지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들은 의회 전략가들을 괴롭히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갔다. 이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중이 의원들을 대하는 태도를 규정짓고 있다. 따라서 제국의회 의원단의 태도는 수많은 사안의 결정적 계기, 말하자면 최고법이다.
대중은 의원단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가장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비판을 극도로 자제한다. 설령 비판을 가하더라도 조심스럽게 덮어두거나, 아니면 지도부의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181p
당 지도자들은 또한 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당 조직의 복잡성을 내세워 직접투표로 치러온 당 선거를 간접투표로 전환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한편 훨씬 더 복잡한 국가 조직과 관련해서는 인민발의권과 인민거부권을 보장함으로써 인민입법을 실현시키라고 요구한다. 그처럼 동일한 문제에 대하여 당정과 국정에서 상이한 입장을 제시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노동자 정당 전체에 배어 있다.

181p
다음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논리를 대중에게 설파하려 들기 때문이다. 1. 여러분은 지도자에게 지시를 내릴 권리를 갖고 있다(민주주의). 2.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우리의 의지 혹은 우리의 현명한 통찰과 어긋나는 결정을 내릴 경우에는, 충돌이 불가피함을 주지하라.

192p
따라서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준 바로는, 결정적 순간에 지도부를 제압하도록 대중에게 주어진 가장 과격한 두가지 수간, 즉 대중 집회가 협상의 초점이 되도록 집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것과 마땅치 않은 지도자를 해임하는 것이 전적으로 무기력하다는 사실이다.

192p
민주 정당과 사회혁명 정당의 지도부는 위급한 경우, 당 전체의 의사에 절대적으로 독립하여 완전한 전권을 쥐고 독자적인 정치를 수행할 권리가 있다. 확대 당직자회의(전당대회, 총회 등)에서 깨뜨릴 수 없는 것으로 의결된 전술적 사항을 지도부가 빈번하게 위반하는 행위, 중요한 사안을 소위원회에서 결정하여 당 전체로 하여금 그 결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버릇, 지도부 사이의 비밀 담합, 정부와의 비밀 협상 및 약속, 의원단이 상부(당 최고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으면 부당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아래(일반 당원)에 대해서는 엄수해야 하는 의원단의 침묵 규정 등, 이 모든 것은 극성 과두 체제의 자연적 결과들이다.

197p
국가 관리의 수는 불만족한 중간계급보다 느리게 증가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래도 그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때로는 필요를 초과해서 증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관료제는 끝도 없이 나선형으로 증가하다가, 점차 공공선과 합치되기 힘든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관료제라는 기계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관료제만이 안정된 삶을 향한 지식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관료제는 따라서 국가의 자위 수단이다.

245p
빌헬름 2세는 ‘불평꾼들’에게 자신의 제국에서 사는 것이 싫으면 신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리고 독일을 떠나라고 말했다. 사민당의 베벨은, 당은 당내에서 불평만 늘어놓거나 선동만 일삼는 자들과 결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당 지도부의 방침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은 ‘떠나버려야’ 할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양자 사이에 자발적이 조직(정당)과 비자발적인 조직(국가), 말하자면 사람들이 가입하는 조직과 사람들이 태어나는 조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가?

252p
경제적으로 과거에 속하는 계급이 추후에도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현재에 속하는 계급들, 혹은 늦든 빠르든 미래의 경제를 장악하게 될 계급들이 자신들의 국가적, 경제적 중요성 및 권력 지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요인은 그들이 현재 자신에게 가해지고 있는 불이익과 멸시를 문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식을 그처럼 결정적으로 마비시키는 것은, 자신이 무기력한 존재라는 슬픈 믿음이다. 이러한 숙명론적 무기력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그리고 한 계급에 가해진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의식이 각성되고 첨예화되지 않는 한, 해방을 위한 그 어떤 노력도 경주될 수 없다.

260p
인민 대중, 즉 인민 계급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운동에 가담하도록 하는 일은 일상적인 조건에서는 설득 기법만 알면 쉽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떤 계급에게 그들이 누리는 높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회 투쟁의 역사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270p
“사회주의는 전적으로 마음에 든다. 사회주의자들만 없다면!”

273p
이를 하나의 원칙으로 정리해보자. 많은 젊은 부르주아지들이 가슴 속에 선한 의지의 지순한 불꽃을 품고 갈채와 명예와 돈을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에 뛰어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자신의 양심을 평화롭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내적 확신을 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디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두 가지 유형, 즉 부드럽고 모든 것을 이해하며 모든 인간을 감싸안는 사도 유형과 불같고 단단하며 타인과 자신 모두에게 엄격한 광신자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275p
권력을 장악한 사회주의는 기생적인 인간들에게 엄청난 매력을 발산한다. 이는 국가보다 훨씬 작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협동조합과 도시 정부와 인민은행이 노동자 정당에게 장악되고 지식인들에게 높은 수입과 영향력 있는 지위를 제공하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사회주의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전혀 없는 장사꾼 사회주의자들이 몰려든다. 어디서나 항상 그렇듯이,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이상주의의 성공은 곧 그 죽음이다.

282p
배부른 사람들 중에서 온순한 자들은 경우에 따라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에 걸맞는 인류애를 과시할 필요성을 느낀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안락함이 이웃에게도 나누어질 수 있기를 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은 부유한 박애주의자들인 셈이다. 그들의 가장 내적인 충동은 흔히 감수성, 감상벽, 즉 고통받고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없다는 감정이다. 이는 그들이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동정심을 느끼기 때문이라기보다, 이웃의 고통이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고 자신의 미적 감성에 고통을 주기 때문에 나타나는 감정이다.

305p
영미의 비교적 규모가 큰 노동조합들은 거의 모두 조합주의의 경향, 즉 노동귀족의 경향을 드러낸다. 이미 성장한 노동조합은 더 이상 선전활동을 벌이지 않는다. 가입을 촉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가입비를 인상하거나 전문적인 직업교육 이수 증명을 요구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조직의 외적 성장을 막는다.

366p
우리는 오늘날, 민주 정당의 심각한 내부 갈등이 순수한 이론을 무기로 하여 치러지는 원칙의 투쟁이기를 멈추고 곧바로 사적인 싸움으로 변질되어, 결국에는 부지불식간에 표면으로부터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한다. 이러한 은폐정치는 정치 조직이 관료화되고 정치 활동의 주안점이 선동에 놓이게 되면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선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최대 다수의 당원을 끌어들이는 것이 되어버리자, 이념 투쟁은 방해물로 인식되고, 따라서 가능한 한 회피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367p
혁명을 표방하는 정당이 보수적인 내적 본질을 갖기에 이르는 기나긴 사슬의 마지막 고리는 정당과 국가 사이의 관계이다. 중앙집권적인 국가 권력을 타도하기 위해서 탄생한 정당은, 국가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역시 거대하고 견고하게 조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노동자 정당은 고도로 중앙화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랑하는 자신의 조직 원리는 타도의 대상인 국가의 조직 원리와 동일하게 된다. 그 원리는 권위와 규율이다.

370p
이렇게 하여 조직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부터 목적을 위한 목적으로 바뀌게 된다. 기관(organ)이 유기체(organismus)의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 당 기구의 활동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들, 예컨대 하위 부서들의 통괄과 일사불란한 협조 체제, 서열 관계, 비밀 엄수의 의무, 정확성 등이 이제는 당 기구의 생산성 자체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388p
사회주의자들은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그렇지 못하다. 사회주의자들이 승리하는 순간 사회주의는 몰락한다. 대중이 전력을 다하여 지도자들을 교체한 뒤 만족해하는 것은 가히 희비극이라 할 만 하다. 노동자들에게는 오로지 “정부를 충원하도록 하였다.”는 명예만이 남을 뿐이다. 선의의 이상주의자들조차 일단 지도자가 되면 단기간 내에 지도자의 일반적 속성들을 갖게 되는 심리학적 현상까지 고려한다면, 노동자들의 그 명예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391p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트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고 말솜씨도 뛰어난 지도자들의 견고한 연설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은 나머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하나의 고정 관념이 생겨난다. 투표를 통하여 자신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대변인에게 위임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자신이 “지배에 한몫”한 것이라는 관념이 그것이다.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당 조직이 실제로는 지도자의 지배 체제라는 사실은 명료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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