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보고

아무래도 내가 온라인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은 특정한 감정인가보다. 결혼 이후 홈페이지 사용이 멈추다시피 했는데, 2년 전에는 SNS도 중단했던 차이다.

Covid 19 이후 우리 병원도 위험 앞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든지 병원 폐쇄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나도 병동당직과 선별진료소 근무를 간간이 하게 될 것이었고, 집단감염이 발생한 때는 둘째 임신이 확인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해외 뉴스로만 발병소식이 들리던 유행 초기부터 매일같이 관련 자료를 검색했지만 n수가 적은 터라 임산부 감염의 위험에 대해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건 불가능했고, 남는 건 CDC의 ‘임신 1분기 고열 증상시 Birth defects가 발생할 수 있다.’ ‘SARS, MERS에서는 수직감염 사례가 존재했다.’라는 보고들이었다.

강릉에서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 군이었던 나는 강릉 확진자가 한번에 4명이 발생하던 날 발열 증상이 생겼고, 다다음 날 음성 결과(당직 근무가 있어 몇 안되는 연차를 쓰고 검사를 받았다.)를 받아들고 황진원과 김소린을 처가에 보내는 선택을 내렸다. 절대 어디 나가지 말라는 말과 함께.

이후 강릉 확진자는 1명에 불과하였지만, 우리 병원의 선별진료소에서 그 1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근무 날짜만 달랐으면 내가 대면했을 환자였다. 나는 가족에 대해 내렸던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전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 일일 확진자가 100을 넘지 않고 있는 것은 여러 사람의 희생과 뛰어난 이들의 선명한 판단이 내렸던 기적과 같은 일이니까.

다만, 내가 여기 혼자 남아있는 것에 별 걱정이 없었던 건 과신이었던지도.

고등학교 입학시부터 결혼까지 15년 남짓의 기간동안 부모와 함께 산 것은 2년 정도이다. 마침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심했던 때였고, 나는 혼자 사는 게 편안했다. 그 바빴던 인턴 시절에도 방을 구해 따로 나와 지냈을 정도다. 혼자 있는 공간을 안식처로 여기는 터라, 지금 사는 아파트의 김치냉장고 공간이 우리 집에서는 문닫고 기타를 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 모두는 사회적 접촉이 있던 시절의 경험이었다. 좋든 싫든 여러 사람과 공부하고 일하며 지냈던 그 시절은 갖가지 사회적 경험들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고, 그 자극을 소화하기 위해 혼자만의 시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달라진 것은, 그 소화를 이룰 수 있는 전제 조건이,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이었다는 것. 몇년의 삶을 함께 보내왔던 황진원, 그리고 김소린이 옆에 없다는 건 편안함이 아니라 결핍으로 남는다. 지난 주부터 무감동(Apathy) 증상이 발생한 듯 하다. 무엇을 해도 흥미가 떨어지고,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다행인 점은,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발적 국소 유행 정도로 감염을 ‘투명하게’ 통제하고 있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과, 황진원의 임신 1분기가 거의 끝나간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집 등원 여부와 상관없이 가족 상봉일자를 잠정해 놓았다.
문득 타인이 아닌 존재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체감한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황진원, 김소린,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그러한 안식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가족이다.

1. sns를 중단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일은 지난주로 마무리되었다. 법적인 책임이 사라짐과 별개로, 내 마음 한켠에 영원히 자리잡을 일. 그 분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영원히 명료하게 살 순 없다는 걸 그 시간들을 통해 깨달았다. 좀 더 너그럽게 살 것이라 매번 다짐한다.

2. 당은 언젠가는 탈당할 예정.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이 곳은 사람이 먼저가 아닌 이념과 조직이 먼저인 곳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머릿수와 우리편만이 진리인 곳에 정붙일 이유는 찾기가 힘들다.
과두제는 라틴어로 oligarchy였다. 어딜 봐도 이 당 상황인 것이 의외지만, 100년 전의 책은 이미 유럽 사회주의 정당의 모습을 통해 그러한 과두정이 진보정당, 아니 인류 정치에서 변치 않을 속성임을 보여주었다. (정당사회학, 로베르토 미헬스 저)
뜬금없지만 이 정치적 단어가 의사들은 이해할 어휘라는 데 실소를 머금는다.

3. ‘근황을 전해야 할 것 같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이리로 다시 옮겨왔다.  댓글만 달고 나서는 페이스북에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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