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나는 완벽히 이타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타적인 삶과 이타적인 이들과 함께 하기를 꿈꿔왔다. 실지로 인간 세상은 그런 이들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살아왔던 건 그 어떤 이들에게도 이타성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정치적 성향이 극에 있는 이들의 이타성이 높을 때도 많이 목격하며 뿌듯했던 적이 있던 반면, 이기주의를 목도하고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스스로 분에 차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때도 많다. 그 덕에 여론을 그르친 적도 있고.

나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대한 믿음은 어느 정도는 그 이타주의에 있을 것이다. 모두들 힘을 합쳐 결정을 내리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서로의 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뭐 이런 것들. 설사 자잘한 다름은 있을 지언정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믿음과 그를 지탱하는 이타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Covid 19가 우리 삶을 잠식하며, New normal을 이야기하는 각 분야의 specialist들이 점점 늘고 있다. 아직 일상의 변화가 임시일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지만, 현실은 질병의 종식이 아니라 통제에만 성공하는 것조차도 큰 성과인 상황이다. 산발적인 지역감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어린이집의 긴급보육은 사실상 정상운영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끼지 않고(심지어는 교사마저도), 모두 모여서 밥을 먹고 많은 활동을 같이 한다. 아마 신입원아 등원이 시작되면 80% 이상의 인원이 등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엔 너무나 무방비하다.

또한 나머지 20%의 인원들은 한명을 제외하면 감염 우려로 보내지 않는 집들의 경우이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에서 완벽히 소외되어 있다. 수십만원의 보육료를 추가로 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아이들이 없는 교사들의 보육사진을 매일같이 봐야 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보는 고충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의견을 내보았다. 이렇게 운영할 수는 없음을, 긴급보육인 상황이면 보육형태를 변경하여 (혹은 등원률을 낮추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악의 정도까지는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해야 함을 말이다. 사실 안은 중요하지 않지만, 어쨌든 안의 형태는 다음과 같았다.

-필수보육군 분리, A군, 일찍 등원, 늦게 하원, 2층에서만 생활
선별보육군은 B1/B2로 나누어 격일로 등원
A와 B군의 접촉은 없도록 운영. 교사는 A군 B군을 따로 운영.-

이런 경우 필수보육군은 등원이나 생활에서 약간의 피해를 입게 되지만 매일 등원하게 되며, 선별보육군은 격일로 등원한다. 무엇보다도 무증상 확진자가 어린이집에 존재하는 경우 접촉하게 되는 원아는 1/3, 교사는 1/2로 줄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은 안이라 생각하며(가정보육중인 한두 가정은 이 변경건을 믿고 등원을 시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글을 올렸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오롯이 침묵뿐이다. 오롯-이. 그나마 운영위에 있는 부모 둘만이 두루뭉실한 의견을 제시했을 뿐인 것이다. 재차 향후 보육방침에 대해 논의하자는 글을 올린 상태이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 뿐. 이제는 형식적인 답글도 달리지 않는다.

현재 절반 정도 되는 아이들의 부모는 맞벌이도 아니며, 한부모 가정도 아니다. 단순히 말하면 육아가 힘들기 때문에 보내는 경우이며, 변경된 안에서는 이들이 보육의 책임을 더 지게 된다. 나는 이들이 침묵하는 이유에 대한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정보육을 하는 가정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응원을 주기라도 했던가? 의견은 없었고 응원은 몇 명 존재했다.

이사장에게 물어봤지만, 아마 그들은 별로 염려하지 않는 것 같다. 현황을 유지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는 대답. 개인적으로 몇명에게 물어보긴 했겠지.

현실은, 강릉지역사회 첫 확진자가 발생한 다음날 등원했던 아이는 단 1명이었다는 것. 나의 의심에서 자유로운 가정은 그 가정 뿐일 것이다.

만약 우리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이런 정도로 결판이 난다면, 굳이 내가 이타성을 외치며 이 곳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 대한 희망도 많이 걷어들이게 되지 않을까? 결국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우선인 것일까. 진보 정치에 대한 희망은 이미 접어둔지 오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길 바라고 있다. 결정은 다음 주 쯤이면 날 것이다.

“공동육아”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marooned08/04/2020 21:17응답

    결론
    전원 참석
    내가 낸 아이디어보다 더 고심한 아이디어도 있었음 감동..
    뼈를 묻어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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