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2016년 전공의를 마치고 취업을 하는 시점부터, ‘말해야 하는 것에는 말을 하겠다.’라는 원칙 비슷한 것을 세웠다. 비겁하게도 직장 외의 지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몇번의 트러블을 일으켰고, 잘 마무리 한 것도, 악감정만 남긴 채 흐지부지된 것들도 있다.

언쟁 중 진원은 내게 악담을 하겠답시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널 싫어하는 거야.”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받아치고 당연한 듯 넘겼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을테다. 모두가 자신을 싫어하진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명확한 사실이다. 이미 저질러 놓은 것도 많고, 타인들에 대한 나의 관점도 있으니 그들의 차가움을 애써 무시하려고 하지만,  

한가한 시절이라 책을 읽던 중, ‘나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잠시 침묵했다.’라는 구절을 읽었다.(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리 매킨타이어. 위즈덤하우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보는 넷플릭스의 아이슬란드 드라마 ‘트랩트(trapped/entrapped, 제작사가 넷플릭스로 바뀌며 영문 제목이 달라진 듯 하다.)’의 주인공 안드레의 인상깊은 과묵함도 떠오른다. 그는 본인의 감정이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말을 아끼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무겁게 듣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의 ‘직언’을 떠올려 본다. 우울감에 시달리며 생각을 숨기던 대학 시절이 끝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조금씩 품에 있는 말을 주변에 꺼내기 시작했는데, 당시 느꼈던 감정들은 안도였다. 내가 풀어놓는 생각들을 타인들이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안도. 그렇게 시간이 점차 지나며 나는 말을 아끼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지 않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안도를 불러일으켰던 그 호의들은 내 생각이 그르지 않아서 타인들이 보인 반응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말의 함의보다 발화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일 테니까. 당시의 나의 태도를 내가 설명할 수 없지만, 나의 마음가짐은 알고 있다. 최대한 조심스러웠고, 정돈해서 말하려 했으며, 굳이 타인을 공격하지 않으려 했다.

반면 지금의 나를 돌이켜 보면 이러하다. 상대의 말이 길어지는 듯 하면 끼어들어 버리기도 하고, 공감보다는 판단을 우선한다. 어떨 땐 취해 있고, 상대방의 반응을 알아차리는 노력같은 건 잊어버릴 때도 있다. 이럴 때 입바른 소리를 한다고 누가 이해해주지도 않을진대 말이다. 

일단은 말을 하기 전 침묵해보자. 바른 태도를 생각하고, 상대방 말이 왜 나오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집에서부터, 친목의 자리까지도. 내가 옳은 것에만 집중하지 말자. 어차피 매번 옳지도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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