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죄책감

개인적으로 나는 내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의사로서의 길을 후회하지 않은 지는 오래 되었으나, 검진센터 의사로서의 업무는 사실 아무 보람도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사회 의사로서 기여하고자 하는 뜻을 실천하고자 격렬히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어제는 당직을 섰다.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 일찍부터 발생하는 외부의 소음과, 혹시 모를 병동콜의 압박은 항상 의외의 시간에 내가 깨도록 만든다. 따라서 보통은 오전 근무 전날이나 휴일 전날의 당직을 선호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 근무는 위의 무익한 느낌과 겹쳐 다른 때보다 훨씬 심드렁해지기 마련이다.

보통은 찾아오지 않는 20살 언저리의 청년 둘이 검진을 왔다. 사실 이 연령대는 본인이 원해서 오는 검진이 아니다. (나이대가 높아질 수록 본인의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검진을 이용하려는 비율이 늘어난다.) 평상시라면 이런 이들에게도 적당히 사무성이 가미된 친절을 보여줬겠지만 오늘같이 심드렁해진 날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상태에서 그 사무성만을 드러내게 된다. 서로 이 자리가 굳이 필요없음을 잘 알고 있다는 나만의 전제 하에서 말이다.

이상하게도 한 청년이 공손하다. 나는 진료실에서 내보내며 항상 인사를 하는데, 보통은 답을 하고 나가는 사람이 절반이 채 안되는데, 이 청년는 내 심드렁함을 겪고도 웃는 얼굴로 끝까지 인사를 하고 나간다. 아는 사람인가?

얼마 전 강릉 유일의 음악바에서 작은 진상을 피웠던 기억이 난다. 손님이 끊긴 밤 사장님이 혼자 기타를 치고 있던 걸 보고 만취해 있던 내가 혼자 반가워서 들어갔는데, 부끄러움이 많은 그 사장님은 금세 기타를 내려놔 버렸다. 아쉬워서 사장님한테 기타 다시 쳐달라고 조르고조르고 졸랐는데 절대 안쳐줘 섭섭했던 기억. 그 때 있던 그 알바생, 두번 봤을 뿐인데 날 기억하고 있어서 좀 놀라고 창피했다. 당분간 다시는 안가리라 다짐했었는데, 혹시 그 친구인가?

아무도 모르지. 뭐 사실이건 착각이든 간에, 누군가의 호의에 부응하지 못할 때에는 일말의 죄책감같은 것을 느낀다. 하필 왜 오늘 왔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고. 그러고 보니 또 한 명이 더 기억난다. 힘들다고 할 때 뭔가 쌀쌀맞게 굴었던 기억. 이후 연락이 없는 그 친구에게라도 다시 안부나 물어야겠네. 뭐라도 죄책감을 덜어야지.

댓글 남기기